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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 23년 2월호

愚賢 2022. 12. 13. 23:01

꽃 제단

 

꽃 먼저 내는 나무는 죽음의 편이다

꽃눈이 열릴 때부터

햇빛의 방향을 서쪽에 맞추고

가장 예쁜 색으로 접시마다 상을 차린다   

 

제단에 오른 것들은    

바람의 말을 잘 듣고

한도 없는 웃음을 가져

봄의 중앙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된다 

 

쓰디쓴 울음은 어디에 감추는지

 

다가가면

제 몸으로 품어 그늘이 깊은 바닥

거기 어디쯤

꿈으로 돌아가는 잠의 예약이 싱싱하다

 

먹이 쪽으로 눈이 먼저 날아가는 벌처럼

제수를 뜨고 지나는 길

 

몇몇 후회와 만족이 함께 사는 한 철 

늦은 끄트머리에 

아직 떠나지 못한 꽃송이 목이 아프다

 

제물은 시작부터 환생을 꿈꾸었던가

꽃은 지고 싶어 활짝 핀다

 

거미의 시간//

 

거미 한 마리 주차장에 붙어 있다

낮이 멍석을 깔고 서서히 어둠의 조문이 우거지자
바람이 빈집으로 이사한다

지상의 끝은 어디나 절벽
찻길도 구석도 같은 얼굴로 병풍을 친다

코끼리가 죽을 자리로 돌아가듯
구석 자리로 옮겨진 거미
제 몸만큼 바람의 지분을 얻어 마지막 안식처로 굴렀다

며칠 전 영안실에서 잠드는 집의 노래를 들었다
노인은 웃음 머금은 그림을 그렸지만
살던 집으로 난 발자국은 지워졌다

주차선을 잊은 차가 거미의 시간을 밟고 간다

바람이 새 문패를 거는 동안
시간의 침대 위에 누웠던 영혼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저녁이다